더 나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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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어울리지도 않는, 되도않는 짓거리 마. 자기 혐오 우울병에다 인간 혐오까지 찌들어서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하잖아. 더 편하기도 하고. 나 하나 부정하기에도 충분히 힘든거 알면서, 뭐 그렇게 싫어할 거리를 더 만드려고 발악중일까? 아무짓도 하지 말고 눈 꼭 감고, 귀 틀어막고 산다면 다시 고요함만 버티면 되는 일을. 지렁이는 사람 손과 닿으면 그 체온만으로도 화상을 입어버린다지. 나도 지렁이인지 사람과 닿는다면 아무리 다 괜찮아 보여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국 화상 흉터만 남아버리고 마는걸. 늘, 여태까지 하던대로 해. 사람이 갑자기 달라지면 큰일난다잖아? 근데 지금보다 더 큰일날 게 얼마나 있을까.

글/에세이 2023.02.21

깊은 밤

다들 그런 말 하잖아. 대학 가서 사귀는 친구들은 다 비즈니스 관계라고. 나는 한 때는 '그런게 어딨어, 마음 맞으면 얼마든지 친해질 수 있는거지' 라고 생각했었어. 근데 웃긴 게 이미 그 생각은 내 머리 깊숙히 박혀서, 조금씩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물들어가더라. 과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그중에서는 먼저 나서서 날 챙겨주는 친구도 있었고, 내가 연락을 잘 안해도 늘 웃는 얼굴로 반겨주면서 장난도 쳐 주는 친구들도 있었어. 동아리는 더 좋았어. 나보다 나이 많은 형 누나들도 엄청 친근하게 잘해줬고, 나랑 비슷한 시기에 들어간 동기들은, 아니 걔네는 완벽하다시피 한 친구들이었지. 그래 친구. 힘들 때 함께 버티고 즐거울 때도 같이 즐길 수 있는 그런 친구. 그랬었어. 근데 내가 무너지기 시작하..

글/에세이 2023.01.08

마인드셋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지지말자. 합리화하고 머무르는 것 만큼 추한 것은 없으니까. 무력함에 익숙해지지 말자. 아무것도 못하고 지켜만 보는 스스로에게 분노하자. 갖지 못한 것을 바라만 보고 있지 말자. 탐욕은 늘 마음속에 머무른다.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을지 계속 머리를 굴려라. 나보다 더 뛰어난 것을 선망하지 말자. 끊임없이 질투해라. 나보다 뛰어난 것들을 언제까지고 내 머리위에 두지 말고 따라잡자. 더 뛰어난 것이 있는 한, 얼마든지 쫓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의 초라한 모습에 계속 좌절하자. ‘그 정도면 됐지’따위 약해빠진 마음은 버리자. 추하고 초라한 지금의 모습을 계속해서 되새기자. 뼈저리도록 혐오해서 벗어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도록 몸부림치자. 늘 무언가에 대해 화가 나고, 지금의 나를 혐오하던 ..

글/에세이 2022.11.28

존재의 변질:디지털에 삼켜진 세상

현재의 세상은 디지털에 삼켜져있다. 수 많은 정보들을 데이터로 변환하는 것 부터 시작해 지금은 보이는 물질들과 사람의 외모, 특별한 순간 등을 모두 디지털로 재구성한다. 이렇게 디지털화 된 것들은 사람이 소비하기 위한 것들이 된다. 덕분에 기억되고 추억의 매개체였던 사진들은 주목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리고, 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외침들은 뒤엉치고 중첩된 소음이 되어 오히려 피로감을 제공한다. 모든 것들이 상품화가 된다. 개인의 얼굴, 경험, 행동 패턴은 데이터 조각들이 되어 무언가를 사고, 팔기 위한 가벼운 무언가가 되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특별해 ‘보이는’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들은 진정 특별한 순간과는 달리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하고 또 다른 것들에 밀려 기..

트라우마

꿈을 꿨다. 그 사람이 내 앞에 있었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아팠는지 그 사람에게 울부짖고 있었다. 눈물이 메마른 줄 알았는데 꿈이라 그런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무너지는 댐처럼 멈추지 않고 터져 나왔고 그보다 더 격하게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사람에게서 기인된 내 상처들을, 그로 인한 아픔들을 내뱉으며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그 잘못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헤집어야 했는지 물었다. 그 사람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심하다는 표정. 어디 실컷 해보라는 듯 한쪽만 올라간 입꼬리. 울부짖는 내 꼴이 우습다는 듯 초승달을 그리는 눈꼬리. 내가 아무리 그 사람에게서 받은 아픔들을 표현해도 그 사람에겐 털끝만큼도 닿지 못했다. 그 표정이. 그 눈빛이..

글/에세이 2022.10.07

감정에게서 벗어나기

감정은 너무나 유약하고 예민하다. 신화속 영웅들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그건 ‘대부분’ 많은 경험과 오랜 훈련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대체로는 사소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극단적으로도 반응하게 만든다. 감정은 주변의 작은 자극에도 과민반응을 하는 것이 기본값이다. 고대인들은 자신을 위협하는 작은 요소도, 자신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식량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낮선 것과 갑작스러운 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그래야만 예상치 못한 위험요소에서 곧바로 몸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 생존하기 위해 작은 요소에도 기대감을 부풀리고 호기심을 가졌다. 그래야 작은 열매도 지나치지 않고 먼저 다가갈 수 있었으니까. 감정의 과민반응은 이렇게 생존에서 기인되었으..

패닉

머리가 돌아가지않아. 집중이 하나도 안돼. 무엇을 해야 할 지는 알겠는데 몸이, 머리가 의도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아. 들어맞지 않는 톱니바퀴 마냥 계속 삐걱대기만 하고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는 일이 반복돼. 도대체 무 일상은 정해져있어. 내가 일어날 이상적인 시간도. 내가 일을 하기 가장 적합한 시간도. 내가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일도. 근데 이게 뭐야? 알고 있으면 뭐해. 알고 있는 만큼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고통받고 있을 뿐인데. 원인도 모르겠어. 그냥, 몽롱한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을 흘리고 자고 있던 것 처럼,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틀어지던 일상이 이제는 기괴하게 뒤틀려가. 지금 갖고 있는 것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어. 두눈 똑바로 뜬 채로 소중..

글/에세이 2022.09.27

두 가지 행복

행복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장기적인 행복과 단기적인 행복. 자극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게임을 하거나, 마약성 약물을 복용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일까지도 순간적인 행복감을 제공한다. 반면 운동을 하거나, 채소류와 양념이 가벼운 음식 등 건강한 식습관은 건강한 신체를 통해, 공부를 통한 자기계발은 자존감 상승과 스스로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장기적인 행복을 준다. 단기적인 행복은 대체로 시간, 돈, 혹은 신체를 소비해 행복을 얻는다. 반면 장기적인 행복은 지금의 집중력과 인내력을 소모하며 스스로 고통에 뛰어듦으로써 역설적으로 행복을 얻어낸다. 단기적인 행복은 중독성을 지닌다. 수반되는 고통 없이 손쉽게 행복감을 얻을 수 있어 수시로 떠오르기 마련이고 이 때문에 다시 찰나의 행복을 위해 움직이게 만든다..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일상

최근 대학교에 복학하게 되면서 내 삶에 ‘대학생’이라는 키워드가 다시 자리잡게 되었다. 학교를 가게 되며 사람처럼 보이려고 옷도 고르고, 아침마다 머리도 만지고, 기존에 꾸준히 가던 운동과 독서하는 시간도 수업에 지장 없도록 조정하고, 집에 와서 과제와 복습도 한다. 다만 기존의 삶과 다른 새로운 역할이 적응이 되지 않는지 모든 일들에 있어 집중도가 현저하게 낮아졌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SNS와 유튜브 등으로 인해 버려지는 시간들이다. 밖에 있을 때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생산적인 활동을 위해 집 밖에 나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무의식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덜하다. 진짜 심각한 상황은 집에 왔을 때다. 이전까지는 집에서도 독서에 집중도 잘 되고, 세탁을 돌리고 빨래..

글/에세이 2022.09.15

단절

친구들이 있다. 가족도 있다. 그들과 종종 밥도 먹고, 더욱 간혹은 술도 마시며 웃고 떠든다. 하지만 사람들과 바로 앞에서 마주하고 있어도 공허함과 외로움이 덮친다. 사람을 마주하고 있지만 게임의 NPC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는 의도가 있고, 나는 그에 맞춘 대답을 한다. 적당히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말들만을 골라 한다. 어차피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바라는 게 있으니 맺어지는 것이니까. 그게 돈이든, 만족감이든, 즐거움이든, 혹은 다른 무언가든. 이런 자각을 갖고 사람을 대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군대에서부터일까. 그 즈음부터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타인이 아닌 내가 아닌 것들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때 부터 세상은 세상속에 살아가는 나와 수많은 타인들이 아닌, 세상..

글/에세이 202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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