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을 더 벌고 싶다. 남들이 입이 닳도록 이야기 하고 내 귀에서 피가 나도록 듣는 그 ‘경제적 자유’. 이런 자유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 쫓는다. 옛날부터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혁명을 거듭했던 것도, 지금도 사람들이 각자의 이념을 가지고 대립하며 싸우고 있는 이유도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다.
하지만 자유에는 행복이 동반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람은 당연히 행복하지 않나” 혹은 “돈을 많이 벌면 당연히 행복하지 않겠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글쎄, 앞에서 말했듯 자유는 개인에게, 혹은 사회에 더 많은 선택지를 고를 능력을 준다. 하지만 선택이란 늘 그렇듯 예상과 다른 불러오기 일쑤이기에 자유를 얻어내고 택한 선택이 되려 불행을 불러오기도 하고, 자유를 얻어내기까지의 노력을 후회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유로움을 얻어내 행복한 사람의 조건은 자신이 어떤 것을 희망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그 일을 통한 선택이 불러오는 결과에 관계 없이 선택의 과정과 그것으로 겪는 경험 자체에서 행복을 얻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다는 건, 굳이 더 큰 자유가 아니더라도 현재의 제한된 자유 속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더 큰 선택지를 얻었을 때에도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몇 없는 선택지에서도 자신을 위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데 과연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진다 해서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을까?
물론 현재의 선택지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선택지가 불행만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행도 모두 똑같진 않다. 어느 선택이냐에 따라 불행의 크기가 제각기 다르고, 가까운 미래의 불행이 클 수도 있고 먼 미래의 불행이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이런 여러가지 가능성을 예측해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선택지를 택할 수 있단 말이다. 그런데 단순히 ‘나는 자유롭지 않으니까.’ ‘내 선택지는 고작 이거밖에 없으니까’ 라는 사고방식으로 살아봐야 자유를 얻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뿐더러 천운이 따라 자유를 얻게 되더라도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지 못하고 공허함만을 얻은 채 보다 넓어진 선택지 속에서 썩어갈 뿐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이란 존재에 대한 이해와 그 존재를 위한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판단력이다. 이런 기본 사항도 없이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노력해봐야 얻어지는 건 계속해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한 욕망과 가까워지지 않는 행복으로 인한 공허함 뿐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 하는지 생각해보자.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 하기 싫은 일에서의 탈출? 더욱 편리한 삶? 더 큰 집과 화려한 차? 자아실현? 사람마다 환경마다 무수히 많은 희망사항들이 있으니 나의 행복이 무엇인지 타인이 콕 집어서 알려주긴 불가능 할 것이다. 필요한 건 여러 인간관계와 사건들 속에서 기고 구르며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회피만 해 보아야 행복한 삶은 커녕 아무리 잘해봐야 겨우 ‘그리 불행하진 않은 삶’이 가장 높이 도달할 수 있는 위치일 것이니까.
근데 난 고상한 자아실현도, 화려한사치도 필요 없고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고 현재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만남을 꺼리지 않을 정도의, 귀찮지 않은 정도의 삶만 살고 싶다. 사실 이 정도도 어떤 상황에서도 이럴 수 있으려면 무지막지하게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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